1844년 10월 15일 작센 주의 뤼첸 근처에 있는 뢰켄 마을에서 목사인 카를 루드비히 니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는 어려서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열 살 때 다성(多聲)의 무반주 악곡인 모테토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열다섯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니체는 자신이 열두 살 때 영광으로 가득한 신을 보았다고 적기도 했다. 니체는 열네 살 되던 해인 1858년 나움부르크를 떠나서 포르타의 김나지움으로 학교를 옮겼다. 여기에서 니체는 구스타프 크루크, 빌헬름 핀더 등의 친구와 함께 예술·문학 동아리 ‘게르마니아’를 만들어 매월 한 번씩 모여 각자가 소논문을 발표하고,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악보도 논했다. 니체는 횔덜린, 장 파울,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 낭만주의 문학가, 철학가 및 음악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72년 니체는 첫 작품 ≪비극의 탄생≫을 출판했다. 1873년에는 ≪반시대적 고찰 I≫을 출판했다. 1878년에는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I≫을 출판했다. 니체는 바그너와 다년간 교제하다가 사이가 나빠져 결별했고, 말년에 ≪니체 대 바그너≫ 등의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혹평했다. 니체는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접어들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바그너의 경우≫, ≪이 사람을 보라≫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니체는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니체가 죽자 엘리자베트는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